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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연대기 #6] 블록 사이즈 전쟁: 비트코인의 정체성을 결정한 내전

지난 글에서 우리는 실크로드 사건을 통해 비트코인의 익명성과 검열 저항성이 실전에서 어떻게 증명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비트코인이 외부의 압박(정부의 수사)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동안, 내부에서는 또 다른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바로 비트코인의 미래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블록 사이즈 전쟁(Block Size War)이다. 이 전쟁은 단순히 기술적인 논쟁을 넘어, 비트코인의 본질이 결제 수단인가, 아니면 가치 저장 수단인가를 결정짓는 단판 승부였다.


1. 1MB의 한계와 성장의 통증

비트코인이 유명해지면서 네트워크 사용자가 급증하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초기에 설정해둔 1MB라는 블록 사이즈 제한이 병목 현상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블록 하나에 담을 수 있는 거래 건수가 제한되다 보니 전송 속도는 느려지고 수수료는 치솟았다.

당시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두 진영으로 갈라져 정면충돌했다.

첫 번째는 빅 블로커(Big Blockers) 진영이다. 이들은 블록 사이즈를 2MB, 8MB로 키워서 더 많은 거래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이 실생활에서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는 전자 현금이 되려면 빠른 속도와 저렴한 수수료가 필수적이라는 논리였다. 이 진영의 중심에는 비트코인 예수라 불리던 로저 버(Roger Ver)와 당시 최대 채굴기 제조사인 비트메인의 우지한이 있었다.

두 번째는 스몰 블로커(Small Blockers) 진영이다.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들을 주축으로 한 이들은 블록 사이즈를 키우는 것에 반대했다. 블록이 커지면 고사양 장비를 갖춘 대형 채굴 노드들만 네트워크를 장악하게 되어, 결국 비트코인이 중앙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블록 사이즈를 키우는 대신, 데이터 효율을 높이는 세그윗(SegWit)을 도입하고 세부 거래는 레이어 2(라이트닝 네트워크)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2. 합의의 실패와 하드포크의 시작

두 진영의 대립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렸다. 빅 블로커들은 채굴 파워를 앞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고, 스몰 블로커들은 전 세계 노드 운영자들과 함께 비트코인의 분산성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

결국 2017년 8월 1일, 합의에 실패한 빅 블로커 진영은 비트코인에서 갈라져 나와 자신들만의 새로운 체인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의 첫 번째 대규모 하드포크(Hard Fork)이자, 비트코인캐시(BCH)의 탄생이다. 하드포크란 블록체인의 기본 규칙이 바뀌면서 기존 체인과 호환되지 않는 새로운 길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비트코인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똑같은 수량의 비트코인캐시를 공짜로 받게 되었고, 시장은 혼란과 기대로 동시에 들썩였다.


3. 누가 비트코인의 왕좌를 차지했나?

비트코인캐시는 탄생 직후 강력한 채굴 파워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비트코인의 위상을 위협했다. 로저 버와 우지한은 비트코인캐시야말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꿈꿨던 진짜 비트코인(Real Bitcoin)이라고 주장하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하지만 시장의 판단은 냉혹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속도가 조금 느리고 수수료가 비싸더라도, 그 누구도 마음대로 규칙을 바꿀 수 없는 비트코인(BTC)의 분산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인 디지털 금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고, 비트코인캐시는 결제 편의성을 내세운 수많은 알트코인 중 하나로 밀려났다.

이 전쟁은 비트코인이 단순히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와 탈중앙화라는 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는 네트워크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채굴 파워가 아무리 강력해도 사용자들과 노드 운영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변화는 비트코인의 이름표를 달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4. 투자자가 이 전쟁에서 배워야 할 것

블록 사이즈 전쟁은 우리에게 거버넌스(의사결정 구조)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어떤 자산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성능이 좋은 것보다, 그 자산을 지탱하는 커뮤니티의 합의 구조가 얼마나 단단한지가 더 중요하다.

비트코인은 이 내전을 통해 가장 강력한 하드포크 시도를 이겨냈고, 그 과정에서 네트워크 효과는 더욱 견고해졌다.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비트코인의 방향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도는 오히려 급상승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비트코인의 견고함은 이러한 치열한 투쟁의 산물인 셈이다.


마무리하며: 분열을 딛고 서다

블록 사이즈 전쟁은 비트코인 역사에서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지만, 동시에 비트코인이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난 순간이기도 했다. 분열을 통해 각자가 원하는 길로 흩어짐으로써, 오히려 비트코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트레이딩룸은 시세의 움직임보다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생태계의 철학적 응집력을 본다. 다음 글에서는 비트코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가격 폭등과 대중화의 시작이었던 2017년 광풍과 암호화폐 거품 논란, 그리고 ICO(가상자산 공개) 열풍에 대해 다뤄보겠다.

[비트코인 연대기 시리즈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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