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혹독했던 크립토 윈터를 견뎌내며 조용히 기틀을 잡았던 빌더들과 디파이의 탄생을 살펴보았다. 비트코인이 다시금 기지개를 켜려던 2020년 초, 인류는 예상치 못한 거대한 재앙을 맞닥뜨린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도시가 폐쇄되고 국경이 닫히며 전 세계 경제가 공포에 질렸던 그 시기, 비트코인은 자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1. 검은 목요일: 모든 것이 무너진 날
2020년 3월 12일, 암호화폐 역사에서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라 불리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팬데믹 공포가 전 금융 시장을 덮치자 투자자들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자산을 던지기 시작했다. 주식과 금은 물론이고, 안전 자산이라 믿었던 비트코인마저 단 하루 만에 40% 가까이 폭락하며 3,80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비트코인 회의론자들은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위기의 순간에 아무런 역할도 못 하는 비트코인이 무슨 안전 자산이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 폭락은 비트코인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거대한 반전의 서막이었다. 전 세계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전례 없는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2. 무제한 양적 완화: 돈의 가치가 녹아내리다
미 연준(Fed)을 필두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시장에 무제한으로 돈을 풀기 시작했다. 무제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QE). 말 그대로 잉크가 마를 틈도 없이 달러를 찍어낸 것이다.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자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법정 화폐의 공급량이 무한대로 늘어날 때, 내 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중앙은행이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돈과 달리, 발행량이 2,100만 개로 고정된 비트코인의 희소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무한한 달러와 유한한 비트코인. 이 극명한 대비는 비트코인을 투기 수단에서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 즉 디지털 금(Digital Gold)으로 격상시켰다.
3. 세일러와 기관들의 참전: 비트코인의 주인이 바뀌다
2020년 하반기, 비트코인 역사에 남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개인 투자자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비트코인 시장에 기관들이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봉장에는 나스닥 상장사 마이크로스트래티지(MicroStrategy)의 CEO 마이클 세일러가 있었다.
그는 회사의 예비비인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녹아내리는 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다며, 회사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대량 매수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잭 도시의 스퀘어(Square),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Tesla)까지 비트코인 매수 행렬에 동참했다. 폴 튜더 존스 같은 전설적인 월가 투자자들도 비트코인을 가장 빠른 말(Fastest Horse)이라 부르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제 비트코인은 더 이상 괴짜들의 실험물이 아니라, 거대 자본이 포트폴리오에 반드시 담아야 할 거시 경제적 자산이 되었다.
4. 세 번째 반감기: 수요와 공급의 마법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2020년 5월, 비트코인의 세 번째 반감기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돈은 무한대로 풀리고 있는데, 비트코인의 신규 공급량은 오히려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공급은 줄어드는데 기관들의 진입으로 수요는 폭발하는 전형적인 강세장의 공식이 완성되었다. 2020년 말, 비트코인은 2017년의 전고점인 2만 달러를 가볍게 돌파하며 미지의 영역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상승은 2017년의 광기와는 달랐다. 개인들의 묻지마 투자가 아닌,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자산을 지키려는 스마트 머니들의 합리적 선택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위기는 본질을 증명한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비트코인에게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전 세계에 증명할 기회를 주었다.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자산, 희소성이 프로그래밍된 자산이 왜 현대 금융 시스템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다.
트레이딩룸은 시장의 폭락이라는 현상보다 그 이면에서 요동치는 유동성의 원리를 본다. 투자는 기분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읽는 루틴이다. 다음 글에서는 비트코인이 마침내 한 국가의 법정 화폐가 되었던 역사적인 사건,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과 그 이후의 전개에 대해 다뤄보겠다.
[비트코인 연대기 시리즈 다시 읽기]
- [비트코인 연대기 #1] 사토시 나카모토와 암호화폐의 뿌리
- [비트코인 연대기 #2] 제네시스 블록에 새겨진 시대의 경고
- [비트코인 연대기 #3] 피자 두 판에 1만 비트코인: 화폐가 된 디지털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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